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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발견

Love Us 검색 결과

  1. 미리보기 2015.05.06

    위기의 커플 : 종교 편

  2. 미리보기 2015.04.09

    미인 곁에는 나쁜 남자 : 김연아의 연애를 바라보며

  3. 미리보기 2015.03.24

    수지-이민호 열애 : 미인의 운명

  4. 미리보기 2015.03.01

    사랑의 방식: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5. 미리보기 2015.02.02

    조정석-거미 열애, 인연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그 무언가

2015. 5. 6. 20:57 - 아스트랄 동짜몽

위기의 커플 : 종교 편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난 선듯 대답할 수 없다.
사랑은 추상 중의 추상, 손에 잡히지 않을 뿐더러 그 어떤 단어, 의미로도 정의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랑은 정치적인 신념이나 일종의 종교적 신념처럼

그러니까 신념, 어떤 믿음으로 뭉쳐진 마음과 같다.

그 신념에는 어떤 근거나 단서가 없다. 그 자신과 상대의 존재가 그 근거이자 단서다.

시작점도 끝점도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터 생겨난 그 신념은 사랑이 된다.

"네가 나에게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너라고 대답하겠다"


정치는 민주당, 종교는 기독교라는 자신의 정해진 스펙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이라는 빈칸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들어간다. 그 자체가 신념이 된다.


하지만 이 신념이라는 성격 자체가 문제가 될 때가 있다.

바로 신념과 신념이 부딪힐 때다. 흔히 종교에서 그런 양상을 보인다.





우리나라 인구 반은 무교. 그 반을 세등분하면 불교, 기독교, 천주교 인구다.

그러니까 당신이 누군가를 만난다고 할때 50% 확률로 종교인을 만난다는 말이다.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대가 마음에 안든다고 하면 종교인이든 이상한 이단을 다니든 큰 상관은 없을터다.

하지만 문제는, 사랑이다. 이놈의 사랑이란 신념이 이 종교와 줄다리기를 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그녀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

아니면 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데, 자꾸만 교회를 절을 가자고 조른다. 환장한다.

기독교 대 무교, 불교 대 기독교, 천주교 대 불교 모두 다 그렇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과 만나는 것과 같다. 다른 삶, 다른 생각, 그리고 다른 신념.


그래, 그럼 같은 종교인을 만나자 라고 생각해도 한숨 나오는 건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떤 종교에 속해있다고 한다면, 분명히 자신이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이성을 탈락시키고,

그 코딱지만한 확률 속에 속하는 이성만이 자신의 사랑 빈칸을 채우는 이름 후보가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겪고 있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은 지금 노총각 노처녀가 되고 있다. (어쩌면 자발적인)





종교란 건 그렇다. 사람이 단순히 믿고 있다는 대상을 넘어 그 사람 자체가 되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흔히 교회의 많은 자매(!)들이 비기독교인 남친을 전도하려고 애쓰는 모습들, 그리고 교회에 나온다는 약조(!!)를 받고 결혼하는 모습들을 본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종교적인 신념은 외부의 어떤 노력보다 자신 스스로의 변화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 위기를 어찌하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일단 자신을 파악하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무교라면 종교를 용납할 수 있는 타입인지, 자신안에 '신'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자신이 타 종교인이라면 스스로의 신앙이 어떤 상태인지, 상대를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인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용납 못할 거다. 그냥 처음부터 안전한 길을 택하자. 머리 싸맨다고 해도, 답 안나온다.

사랑은 모험이나 탐험이 아니다. 뭔가 드라마처럼 역경을 뚫고 이겨내고 극적이게 성취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신념의 성격을 말하자면, 평안이다. 안정이다. 그 사람 품에 안겨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보호받는다는 그런 느낌이다.

매번 투쟁해야 하고 다퉈야 하고 그래서 뭔가 딜을 해야 하는 그런 관계는 절대 사랑이 성립할 수 없다.


사랑하는데 어떻해요! 라고 묻는다면, 과감하게 헤어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욕심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그 사람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은 욕심이다.

내 종교로 그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은 나만의 투정이고, 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행동이다.


앞서 말했던 자신을 파악했을 때,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깔끔히 헤어지라는 말이다.

이건 앞서 말했던 나이나 거리 문제와 차원이 다르다. 머리 속에 박혀 바뀌지 않는 신념이기 때문에.

둘의 앞날에 푸르른 나날이 계속되리란 보장이 매우 낮다.


반박하고 싶으신 분들, 많을테다. 하지만 난 최소한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이란 신념 빈칸에 최소한 다른 종교 신념 빈칸과 부딧히지 않는 사람 이름을 적어야 한다고.

2015. 4. 9. 19:55 - 아스트랄 동짜몽

미인 곁에는 나쁜 남자 : 김연아의 연애를 바라보며

'퀸' 김연아의 연애가 또다시 언론에 흘러들었다.

불미스런 일로 물의를 일으켰던 남친과 헤어졌다는 소식에 온 국민이 안도와 박수를 보냈던 지 몇 달만의 일이다.

그녀가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고. 그 남자와.






반응은 거의 같다. 왜 하냐는 거다. 뭐가 모자라냐고.

"신은 김연아에게 모든 걸 주었지만 단 하나를 빼놓았다. 남자를 보는 눈"


모두가 탄식을 내뱉고 있을 때, 왜 그 잘난 김연아가 그 (공식 망나니) 남자를 만나는지 생각해봤다.

왜 만날까. 정말 남자를 보는 눈이 없어서 일까?






김연아의 연애 문제 1. 특별한 인생

그녀는 특별하고, 다르게 말하면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한마디로 평범하지 않다는거다. 우리처럼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알바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그러다 누군가 마주쳐서 연애를 하는 그런 아주 평범하고 흔한 일상은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살인적인 운동 스케줄, 훈련, 훈련, 훈련... 그 후에 '연예인' 뺨치는 스케줄, 화보, 광고....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로서의 짐을 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은 포기한 셀레브리티다. 그녀가 그렇게도 바랬던 건 다름 아닌 '평범함'이었다. 우리가 그녀의 마지막 올림픽 후에 그녀에게 바랬던 것도 그 평범한 행복들이었고.


그래, 지금 그녀는 무척이나 '평범'을 쫒고 있다. 남들이 하는 걸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평범한 환경에 들어섰고, 자신도 평범한 걸 좋아하는데 정작 자신은 아직도 특별한 것이다. 특별한 경험,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경험들이 지금의 김연아를 만들었다. 유년기부터 쌓아온 그 '운동선수'로서의 모든 걸 은퇴했다고 버릴 수는 없다. 은퇴를 했어도 그녀에게는 운동선수의 피가 흐르고 있을 터, 무엇보다 이런 종류의 경험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와 통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고민들, 앞으로의 진로, 이제까지 쌓아왔던 기억들을 함께 나눠도 이해할 수 있는 남자. 이제 나왔다. 김연아가 그 많은 남자들의 카테고리 중에 '운동선수'를 왜 골랐는지.



그래도 뭐, 행복해보인다


김연아의 연애 문제 2. 퀸에게 접근하는 남자

운동선수도 차고 넘친다. 김연아의 인맥도 상상을 초월할 듯 하다. 그런데 왜 '그 남자' 김원중 인가. 

이건 순전한 내 추측이지만, 김연아가 먼저 접근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러 남자와도 서스름 없이 (털털하게) 친하게 지냈던 김연아에게 먼저 '대시'를 한건 김원중일 것이 확실하다. 왜 그럴지 이유를 풀어보겠다.


흔히 김연아를 두고 이런 말들이 있었다. '와, 김연아는 누구랑 사귈까.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말 복 받았다'

이 말을 바꿔보면 이렇다. '와, 호감은 있지만 사귈 수 없어. 왜나면 그녀는 여왕이니까'


그녀는 '퀸'이다. 일반 대중들에게도 그렇고, 아마 주변 사람들에게도 같은 매력을 뿜는 사람일거다. 분명히 호감을 느끼고 있는 남자도 많았을 거다. 주변만 봐도, 김연아를 이상형을 뽑는 남자들이 많지 않은가. 그녀는 남자들이 몰려드는 하나의 '꽃'이었다.


하지만 그 꽃도 적당히 피고 적당이 예뻐야지 벌이 달려들 만한지,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대다 보석처럼 반짝인다면 좀처럼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괜히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얼마나 많은 남자가 용기가 없어서 미인을 만나지 못했으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김연아는 많은 남자에게 그랬다. 누가 감히 '퀸'에게 대시하려고 하겠나 말이다. (게다가 그 남자는 전국민을 시누이로 돌릴 걸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그 남자들을 부르는 용어가 있다. '나쁜 남자'





그들은 앞서 서술한 이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 상대가 어떤 감정일지 생각하지 않고, 그리고 거절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마음상태를 지닌 남자들. 무덤덤하게 '이 여자, 갖고 싶다'라고 생각하면 그냥 '고'하는 남자들이다. 이런 남자들은 연애를 쉽게 하고 또 쉽게 잊는다. 김연아의 곁에는 그런 남자가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지금 그녀 옆에 있는 남자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김연아는 좋은 남자를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지금 그녀 주위에는 결국 '자신감 많고 허세 많고 들이대며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자기 감정은 철저히 통제하는 그런 남자'들이 모이게 되어있다. 그녀가 아직도 너무 화려하기 때문에.


그녀가 김원중에게 다시 돌아간 이유도 그런 맥락이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받는다는' 그 느낌을 확실하게 전해준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구설수에 오른 건 별 의미가 없다. 김연아에게 김원중은 이미 소중한 사람이다. 상대가 나쁜 남자든 어쨋건 자기에게 다가와줬고 이해하고 있으니까.


김연아 팬들의 곡소리가 들린다... 아, 하나 예언을 한다면, 그녀는 점차 시간이 지나고 '평범함'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 평범함을 입게 된다면, 반드시 더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만나고 있는 그 남자 말고 말이다.

김연아의 연애에 반드시 필요한 건 그거다. 평범함.

2015. 3. 24. 13:00 - 아스트랄 동짜몽

수지-이민호 열애 : 미인의 운명

수지가 연애를 한다. 이민호랑.

어제 터진, 간만에 연예계 거물들 연애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 반응은 비슷했다.

"수지? 수지가?"


그것도 그럴것이 수지는 '국민첫사랑'이기 때문이다. 미스에이로 얼굴을 알리고, 건축학개론으로 감정이입의 대상이 됐으며 어느 순간 그녀의 얼굴, 말, 행동은 우리 마음 어디선가 염모하는, 바라보는 '사랑의 존재'가 된 수지. 분명 이민호도 큰 인기를 끈 톱스타지만, 이런 어떤 '아이콘'은 아니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민호-수지 열애에 수지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 가십에 다들 잘 어울리네, 수지가 아깝네,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난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수지의 운명에 대해 말이다. 한마디로 미인의 운명, 사랑받는 자의 운명.


사랑의 숫자

우리 모두 삶을 살면서 가능한 사랑의 숫자가 있다. 일종의 방이다. 마치 호텔처럼 방이 여러개여서 남들의 사랑을 받고, 그리고 품을 수 있는 '바람둥이' 혹은 '연예인' 기질의 사람이 있는가 반면, 한번의 일생 한번의 사랑만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모두 자신의 방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 무리 없이 채운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여러개의 방이 있는 사람이, 사랑에 대한 욕망이 대단한 사람이 모태솔로라면 문제가 된다. 하나밖에 없는 방을 가진 사람이 여러개의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이라면 문제가 된다.


수지는 연예인이라서, 그 본업이 '사랑을 받아야 하는 스타'이기 때문에 문제가 안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모태미인 중 일생 단 한번의 사랑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에서 딜레마를 겪는다. 사랑을 받는 것,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사랑이라는 저주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누가 없으랴. 인기 있고, 모두가 날 사랑해줬으면 하는 욕구가 그 사춘기 때부터 영원까지 있다. 하지만 이게 때론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엄청난 미인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보는 사람마다 '예쁘네'하면서 볼살을 꼬집고 머릴 쓰다듬는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조금 크면 이성의 접근이 시작된다. 화이트데이에는 전교에서 손꼽히는 사탕녀가 된다. 모두가 자신을 사랑한다. 처음 받았던 연애편지는 집에 간직하고 있지만, 끊임없는 편지에 이제는 감흥도 없다. 학교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장미꽃을 건네는 그 남자애가 고맙긴 하지만, 그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 사랑이란 감정에 너무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만나다 헤어진다고 해도 금새 자신을 좋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학창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도 마찬가지다. 길을 가다가 당하는 헌팅도 수없이, 찝쩝되는 선배 문자도 수없이, 그러고 나서 조금 민다치면 돌변해버리는 태도까지. 어느새 그녀는 지쳤다. 남자란 존재에. 왜 사랑을 해야 하는지, 사랑이란 감정이 대체 어떤 건지 조차 모르겠다.


물론 이 이야기는 과장이 섞인 픽션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인들이 이런 삶과 감정을 지나쳤음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미인들이 내리는 결론은 이거다.

- 날 좋다고 따라다니는 사람은 매력없다.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겠다.

- 최소한 나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겠다. 잘생겼거나 능력이 있거나.


그들의 인생을 지나쳐보면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이다. 이제까지 '진짜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는 불안함과 조급함이 섞여있는

그래서 그 감정을 불어일으킬 '백마 탄 왕자' 같은 사람 - 혹은 나쁜 남자 - 이나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그러니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잘난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많다. 수지가 괜히 이민호를 만난 것이 아니고, 연예인이 연예인이랑 연애하는 이유는 거의 그런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겪기 위한 노력이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에, 평범한 사랑을 하는 우리들은 행운아들일지 모른다.

그들은 화려해보이고,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워보이지만 그들의 속은 또 복잡하다는 걸.

미인의 삶이 기구하다는 건 예전부터 그래왔다. '미인박명'이란 말처럼 말이다.


단 한번의 사랑의 방을 채우기 위해 항상 그 방을 비워놓고 사는 그녀들.


그래서,

자신이 미인이고, 자신이 미인을 만나고 있다면

자신의 운명을, 그녀의 운명을 이겨낼 어느 정도가 각오가 필요하다.

2015. 3. 1. 21:14 - 아스트랄 동짜몽

사랑의 방식: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어느 동화가 있다. 아주 평범하게 살아가는 '순수'한 여인. 아무런 티가 묻지 않은 백지 같은 그녀가 우연한 계기로 백마 탄 왕자를 만난다. 프린스 차밍. 매력이 넘치는 그에게 한 눈에 반해버린 그녀는 동시에 그의 '공주'가 된다. 하지만 곧 장애물에 부딧힌다. 이들에게는 시부모의 반대도, 출생의 비밀도, 마녀의 계략도 없었다. 문제는 왕자였다. 그가 지독한 변태였던 것이다.

(약 스포일러 있음)


1. 사람의 사랑하는 방식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 살아가는 방식. 또, 사랑하는 방식이. 백이면 백마다 그 방식이 다른 것이고, 두 사람이 만난다는 건 그 방식이 맞부딧히는 걸 의미한다. 서로가 100프로 맞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내 방식, 너의 방식 한 수씩 물러주는 것부터 로맨스가 진전되기 마련. 하지만 그러다 고민이 발생한다. 

"내가 이 사람의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미국 내에서 신드롬, 그리고 그에 따른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영화로 나왔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지기로는 남성이 아닌 '주부들을 위한 포르노'로 표현되었다. 영화를 보자, 그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서문의 이야기 그대로다. 만고불변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다. 그 타겟층의 나이가 19금 이상으로 올라갔다는 것과, 늑대의 유혹이나 트와일라잇처럼 수많이 변주되었던 이야기처럼 한 가지 '변수'가 있을 뿐이다.




바로 이 변수가 문제다. 남 주인공 그레이의 '사랑하는 방식'. 순수한 아나스타샤는 이 방식과 지독하게 씨름한다. 자신이 살아왔고, 배워왔고 생각해왔던 방식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레이의 방식에 혼란스러워한다. 영화 중반 즈음에 아나스타샤가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 묵는 장면이 나오는데, 무척이나 서로에게 다정한 타입인 부모를 보며 아나스타샤는 새삼 생각한다. '그래, 이게 정말 사랑인데'


하지만 이미 사랑에 빠졌는 걸 어쩌겠는가. 그리고 그레이가 변태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자신이 그렇게 바꾸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나름대로 밀당을 하고 치고 빠져도 변하지 않는다. 그 실랑이가 1편 내용의 전부이다. (속편이 있다는 걸 아는 관객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그 속에 남은 건 그레이라는 남자와 이렇게까지해서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지그렇게까지해서라도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는 아나스타샤에 대한 공감 혹은 동정심이다.


2. 이 사람과의 만남, 이어갈까 말까

간단하다. 머리 속에는 엄청난 생각들이 오고가겠지만 사실 그 공식이란 참 간단한 것이다.

내가 상대의 어떤 문제, 그레이의 그림자같은 변수를 마주해서 매우 힘들다고 한다면 누구나 헤어짐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온 모든 걸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렇다.

'내가 이 사람으로부터 얻을 무언가가 그 변수보다 클까'


그레이는 아나스타샤에게 계약서를 내밀며 그녀에게 이것저것 요구를 하자, 아나스탸샤가 묻는다.

"그래서 제가 얻는건요?"

그러자, 그레이가 답한다. "나"


그레이의 변태 성향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그와의 만남에서 얻는 것이 있는가. 아나스타샤는 고민한다.

그레이의 매력, 재력, 스마트한 그 모든 것 vs 그레이의 변태성향



이 두가지 모두 그레이가 가진 것이고 바꾸거나 할 수는 없다. 결국 그레이의 매력들이 자신에게 변태성향을 이길 정도로 크게 다가온다면 만남은 이어가는거고, 그 반대라면 헤어지는 거다.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 용인할 수 있는 '변수'란 딱 여기까지다. 우리의 모든 연애도 마찬가지고.


자, 더 확실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레이의 변태 성향만 놔두고 그의 모든 걸 싹 다 벗겨버리는 것이다. 어떨까? 아나스타샤를 처음에 만난 것이 회사 꼭대기층의 CEO실이 아니라, 어느 허름한 술집이고 그레이는 대학을 갓 졸업 후 그녀가 일하는 철물점에서 잠깐 일하러 오면서 두번째 재회를 한다. 약간의 호감이 있어 그의 세들어사는 집으로 갔더니 방에는 온통 채찍, 수갑 등이 있다. 그의 컴퓨터 인터넷 기록에는 변태 사이트들이 가득하다.


사랑에 대해 눈이 멀었을 때는 자신이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그 포인트 때문에 다른 단점들이 생각보다 크게 안보이기 마련이다. 아나스타샤 혹은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쌍욕을 하고 도망쳐나왔을 것이 당연할 터, 그 치명적인 단점을 살금살금 커버하는 강력한 그레이의 것들이 눈을 가리게 되는 것이다.


3. 아나스타샤, 도망쳐!

영화를 보면서 여자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느끼는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우리나라에서도 적치 않은 반향 그리고 영화 관객층 거의 모두가 여자인 것을 보면 앞에서 잠깐 이야기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초기 어필을 한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이 영화의 감상평은 하나였다. '아나스타샤 도망쳐!'

차라리 아나스타샤의 오랜 친구였던, 사진도 잘찍어서 개인전을 연다는 호세와 연결되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나쁜 남자, 매력남, 억만장자, 모성본능을 일으키는 약한 모습, 그리고 숨겨진 과거. 전부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여성들은 아나스타샤에 자신을 대입시켜 '대리만족'을 하려고 하겠지만, 그게 진짜 만족일까? 이 판타지적 요소들은 사실 '진짜 그레이', 즉 변태인 그를 숨기려고 하는 혹은 상대를 미혹시키려고 하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우리도 사실 다 안다. 사랑이란 것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기적이고 약하고 부서지는 것임을. 우리는 우리를 믿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감정은 수없이 변하고 변한다. 초기 감정은 말그대로 상대의 화려한 눈속임에 속아넘어간 것일 수도 있다. 상대의 '진짜'는 저 깊은 속에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겉을 믿고, 안의 '확인하지 못한 미확인 상대'를 확인하지 않거나 알더라도 무시한다. 지금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레이와 아나스타샤의 이야기가 그나마 이렇게 '로맨스'처럼 표현이 된 것은 아나스타샤의 '밀당' 덕분이었다. 그 미확인을 확인하려고, 그의 마음을 떠보는 것 말이다. 어떤 여대생이 나와 그레이를 보고 만나자마자 그가 내미는 계약서에 '좋아요' 백만개를 눌러줬다면 아마 이런 이야기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여대생은 아마 로맨스는 커녕 그레이에게 이용당하고 단순히 '오락'을 위해, 쾌락을 위해 그녀의 육체를 이용할 뿐일 것이다. 그리고 버려지겠지. (그레이의 앞선 15명의 여성처럼)


정말 답답하고 답 안나오는 이 이야기 속에서 그나마 한 줄기 출구처럼 보이는 것이 그래서 아나스타샤의 이런 고민이다. 그의 치명적인 매력에 이미 넘어갔음에도 그가 하자는대로 하지 않는 건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다. 거기서 '내가 이 남자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살면서 한번 만나보기 힘든 프린스 차밍을 만났는데, 그 모든 메리트를 일단 뒤로 하고 상대의 '진짜'와 사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가 프린스차밍이 아닌데도, 세상 떠나갈 듯한 고민을 하는데 말이다.


#나가며

영화 내내 애를 쓰는 건 아나스타샤 뿐이다. 그레이는 자신의 매력을 믿고 그냥 자신의 자리를 지킬 뿐. 그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그를 이해하려고도 한다. 그레이는 그런 그녀에게 말한다. "그냥 내가 하자고 하는대로 하면 안돼?"


바로 '네!'라고 말한 누군가도 있겠지만, 연애에서는 절대로 그렇게하면 안된다. 연애는 두 사람의 만남이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종속되는 것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 두 사람의 다른 방식이 평등한 노력으로 가까워져야 하며 그 과정에서 사랑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레이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떼를 부리는 것 뿐이다. 수많은 매력과 억만장자라는 요소로 치장한 변태 어린아이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그레이'가 있다. 남자든 여자든. 그에게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과 추한 것들이 있다. 물론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겠지만, 내 안에 나도 발견하지 못한 추함이 있든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것들이 있다. 로맨스가 진행되면서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한다. 다른 방식을, 우리가 정말로 서로 다른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과정이 미치도록 아프지만 어쩌겠는가. 그건 누구나 겪는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이 사람의 '진짜'를 발견했냐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단점은 커버 가능하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영화는 아나스타샤가 그레이의 그걸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이 겹겹히 쌓여있는 대외용 얼굴 밑에 숨겨져 있는 단점 많고 상처 많은 그 얼굴 말이다. 이 관계를 이어갈지 가지 않을지를 결정짓는 키포인트이기 때문에.


당신은 어떤가. 당신의 그레이는 누구인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2015)

Fifty Shades of Grey 
7.2
감독
샘 테일러-존슨
출연
제이미 도넌, 다코타 존슨, 제니퍼 엘, 일로이즈 멈포드, 빅터 라수크
정보
드라마, 로맨스/멜로 | 미국 | 125 분 | 2015-02-25
글쓴이 평점  

2015. 2. 2. 18:41 - 아스트랄 동짜몽

조정석-거미 열애, 인연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그 무언가

오늘 예상치 못한 한 연예계 커플 하나가 탄생했다.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조정석과 가수 거미.

2년째 열애라는데, 이제야 알려진게 놀라울 따름.



무엇보다 신기한 건 이 열애설을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거의 비슷하다는거다.

"뭐? 조정석이랑 거미?"


이 반응은 뭔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 가수가 열애를 한다는 데 있어서 충격을 먹는다든지 하는

그런 반응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의외의 조합이라는 반응이다.


분명 지금은 조정석이 더 잘나가고 있지만,

둘 중에 누가 아깝고 이런 느낌은 분명 아니다.

문득 생각했을 때 "둘 정말 잘 어울린다"라고 떠오르는 그런 그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을 만나보는 사람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인상'일 뿐, 만남에 있어서 이끌어가는 건 다른 '무언가'다.

그걸 찾느냐 아니냐가 사랑의 결실을 가른다.



조정석-거미 둘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동아일보에서 단독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둘 사이에는 '음악적 공감대'가 있었다고 한다.

http://sports.donga.com/3/02/20150202/69428397/1


조정석은 뮤지컬에서 잔뼈가 굵고, 거미도 자타가 공인하는 소울풀한 가수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둘 사이의 케미를 오르게 한 건 음악의 역할이었다.


이래서 우리가 '이상형'을 만들어두면 안되는 것이다. 내가 만날 사람을 하나의 이미지로 가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어떤 케미를 일으켜 어떤 사랑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조정석과 거미처럼.